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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래 사모님이 되시더니 그렇게 바빠? 나는 이사간 줄 알았어."
"후후, 그러게요. 일을 안 하다가 하려니까 도통 짬이 나야지. 잘 지냈죠?"

마주 앉은 민수 엄마의 말투 속에서 그동안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민수 엄마는 동네 이웃으로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잘 맞아 10여 년 넘게 친하게 지내왔다.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가끔 차를 마시러 갈 때도 있었고 김장을 하거나 식구 생일날에 서로 김치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끔씩은 점심식사를 같이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마음 속 이야기도 나누며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만나기는커녕 전화통화도 자주 할 수 없게 되었다. 왜나하면 민수 엄마가 남편회사에 나가 일을 봐주기 때문이었는데 그만큼 사업이 하루가 다르게 잘 되는 것이다.

민수 엄마의 남편, 즉 민수 아빠는 오래전부터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중소기업처럼 현상을 유지할 정도였다. 주로 다루는 품목이 주방용 소품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업종을 달리해서 화장품을 개발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급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공장 부지를 새로 얻더니 조립할 주부사원을 대거 모집하고 어느 날에는 홈쇼핑에서 판매를 시작하더니 연일 매진으로,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나라에서도 각종 지원을 받고. 그리고 지난해 겨울에는 유럽에서 열리는 중소기업 전시회에 나가 놀랄 만큼의 성과를 얻어 올해에는 미국으로 진출하게 되고… 정말이지 흔히들 말하는 '대박'을 맞은 것이다. 그런 민수엄마를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내가 왜 전에 말했죠? 내 사주를 보니 나는 집에서 있을 사주가 아니라 일을 해야 한다고, 그러면 돈을 많이 벌거라고, 원래 예전에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내 사주에 금이 있어서 민수 아빠가 내 덕에 사는 거라고.

그런데 며칠 전에 애 아빠랑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 있는 분들 중 한분이 유명한 스님한테 사주를 보기로 했다는 거예요. 그 스님이 어렸을 때 신이 들었는데 그게 싫어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지금은 따로 나와서 작은 암자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데 워낙 사주를 잘 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그 곳을 찾는데요. 그래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어쨌든 우리는 사주 볼 생각이 없어서 그냥 있고 그 부부만 암자에 가서 보고 우리부부 생년월일을 슬쩍 넣어봤대요. 그랬는데 그 스님이 이렇게 좋은 사주는 오랜만이라면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온 거예요. 그래서 엉겁결에 보게 되었는데 너무 좋다는 거야. 특히 내 사주가 좋은데 내가 남편 회사에서 일을 해서 거칠게 없다는 거예요. 천운이 들었대요. 천운이 한 번 들면 10년은 간다면서. 그리고 애들도 사주가 좋다는 거예요."

민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운 마음 반, 나도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반으로 술렁인다. 그리고 이쯤 되면 그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어머, 그래? 정말 잘 됐다. 정말 잘 보나 보다."
"그럼요. 그런데 그 스님은 비용도 만만치 않고, 거리도 멀어서. 그보다는 민수 아빠가 다니는 곳에 가 봐요. 원래 거기서도 그랬었거든요. 거기에서 알려주는 대로 공장부지도 얻은 거고. 잠깐만요."

휴대폰에서 전화번호를 찾아낸 민수 엄마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큰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참, 미리 전화를 해보고 예약을 해야 해요. 여기도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민수 엄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괜히 급해졌다.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에서 전해져오는 묵직함에 지원군이라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집에 들어서자마나 나는 휴대폰을 열고 그곳으로 문자를 보냈다. '찾아뵙고 싶은데요. 언제쯤이 좋을까요?' 긴장된 순간이 흐르고. '내일 오전 10시에 오세요.' 답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약속이 잡히는 것을 보면 나하고 인연이 있는 거라고 안위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내일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되풀이 되었던 일들이 떠올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사주를 보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지금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사주를 보러 다니게 된 것은 남편이 사업을 하면서부터였다. 사업이라는 게 규모와는 상관없이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남편은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하나도 없이 그저 젊은 패기만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다보니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운이 따르지 않다거나, 뭔가 다른 수가 있을 것 같은 안이함으로 대신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 사주보는 집을 기웃거리게 되고…

사주를 보는 역술인들의 한결 같은 말은 사주 속에는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지나온 삶을 그대로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것에 거는 기대도 당연한 것이 되고. 또 하나, 사주는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는 없지만 비켜갈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이라는 게 돈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태어날 때 갖고 나온 것이 사주라면 내가 사주를 골라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누구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잘 사는데 열심히 사는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합방을 할 때도 길일을 택하는 것이고. 그래서 뼈대 있는 가문이 있는 거지요. 요즘도 아기를 낳을 때 수술을 해서라도 길일을 택해 아기를 낳는다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좋지 않은 때를 비켜가고 싶어 애를 써 봐도… 그러고 보면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내가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게 아니라 내 사주가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도 같다는 것. 그러니 남을 탓하기 보다는 열심히 살라는 말이다.

내 사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사주보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쁜 사주를 조금씩 비켜가기 위해 돈을 들이다 보면 더 힘들어 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두둑한 베짱이 생겼다. '내 사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도 그냥 껴안고 살아가면 죽이기야 하겠냐.' 그런데 갑자기 또 다시 사주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지만 민수엄마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휴대폰을 열고 문자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리고나니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허둥대던 마음이 제 자리를 찾은 듯 편안해졌다.

'그래. 어차피 사주대로 살게 되어있는 게 삶이라면 그렇게 하는 거야. 괜히…'

피하려고 바질거리는 것 보다는 맞서 당당해지는 거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면 죽이기야 하겠어? 사주에 끌려 다니지 말고 사주를 끌어가며 사는 거야.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덧붙이는 글 | '관상' 응모글



태그:#사주,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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