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화 <박수건달>의 한 장면
 영화 <박수건달>의 한 장면
ⓒ 제이앤피

관련사진보기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네요."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면 대개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깜짝 놀랍니다. 간혹 머리를 갸웃거리며 "그런 일 없는데…"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형제나 주변 사람 중에는 없나요? 반드시 있을 텐데."

이번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맞다"는 반응을 합니다. 당연하죠. 어릴 때 물에 안 빠져본 사람이 거의 없고 어릴 때는 물에 빠지면 거의 죽을 것같이 무섭고 두려우까요. 또 자기가 물에 빠지지 않았어도 형제나 주위 사람 중에는 반드시 물에 한두 번 빠져본 사람이 있습니다.

젊을 때는 이렇게 엉터리 점을 치는 장난을 곧잘 했습니다. 예쁜 여자 후배들 손금 봐준다며 손도 만져보고 마음에 두고 있는 회사 여직원에게 사주를 봐준다며 생년월일도 간단히 알아내곤 하였지요. 저에게 이런 신통한(?) 능력이 생긴 것은 제가 처음 일했던 곳이 주로 무당들을 고객으로 상대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무당들이 굿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울긋불긋한 무복을 입고 손에는 딸랑거리는 무당방울과 부채를 들고 시퍼런 작두 위에서 겅충겅충 춤을 춥니다. 무당방울은 7개나 12개이고 부채에는 칠성님과 같은 신령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복도 종류가 많습니다. 대개는 옛날 장군이나 별감들이 입던 복장이지만 용왕이나 선녀, 산신령 등의 복장도 있습니다. 그 희한한 소품이며 복장 등은 어디서 구할까요? 제가 사회 생활을 처음 했던 곳이 바로 그런 무구들을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자연히 내가 일했던 가게의 주된 고객 중에서는 무당들이 많았습니다. 처음 일할 때는 꿈 속에서 무서운 얼굴의 사천왕이 나타나서 목을 조르기도 하고, 내가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는 꿈을 꾸다가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덕분에 일요일이면 함께 성당에 다니곤 했던 저에게 무당이란 존재는 매우 괴이하고 뭔가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서서히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무당들의 세계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당들에게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고객층은 누구일까요? 안 믿을지 모르지만 무당들의 주요 고객층은 바로 무당들입니다. 자신의 점괘가 잘 안 맞으면 다른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많은 고객층이 주로 장사를 하는 분들, 특히 여성 자영업자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매출에 신경이 쓰이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요. 혹시 무당한테 점을 보다가 "당신도 무당이 될 팔자야!" 하는 말을 들어본 분은 안 계신가요? 간혹 못된 무당 중에는 일부러 내림굿을 유도하는 양심 없는 무당들도 있습니다. 내림굿을 유도하면 매우 비싼 값으로 굿을 하기 때문이죠.

장난으로 한 말에 용하다고 난리... 그날 이후 '박수무당' 됐습니다

이렇게 무당들의 생활을 조금 알게 된 후 가끔 엉터리 점쟁이 노릇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진짜 점쟁이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 마포에서 회사를 다닐 때 일입니다. 퇴근 후 회사 동료와 함께 목을 축이려 작은 카페에 들렀습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그곳은 테이블이 두세 개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혼자서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은 예쁘장한 얼굴과는 달리 걸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쁜 주인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사장님은 이 물장사 안 하면 무당이 될 팔자입니다."

장난으로 던진 말에 카페 주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점치러만 가면 모두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만약 무당이 되면 정말 큰무당이 될 텐데. 최영 장군이나 임경업 장군이 내릴 큰무당이 될거예요."
"맞아요. 다들 점 보러 가면 큰무당이 된다고 내림굿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무당이 될 수는 없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장사 시작한 거예요."

주인은 아주 심각하게 말하며 물어왔습니다.

"어떻게, 장사는 잘 될까요?"
"이거 뭐 복채도 없고…. 맨입으로 되나요."
"복채는 걱정 말고요. 정말 장사 잘 될까요?"
"뭐 그냥저냥 큰돈은 못 벌겠고…. 첫 달은 딱 월세만큼만 벌겠네."

그렇게 장난 삼아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지껄였습니다. 그날 술값은 내가 점을 쳐준 것에 대한 복채라며 한 푼도 받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일입니다. 정말 내가 말한 대로 딱 한 달치 월세만큼만 이익이 남았다며 어떻게 그리 용할 수가 있냐고 난리였습니다. 그날은 부서 회식 자리여서 과장님과 부장님도 함께 있었습니다. 부서 내 막내였던 저는 아주 난처해졌습니다. 주인은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이번달 장사는 어떻겠느냐?", "내가 만약 장사 그만두면 정말 무당이 될 팔자냐?", "혹시 무당이 되면 정말 큰무당이 되느냐?", "그럼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거냐?" 등 폭풍 질문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전 회사 내에서 '박수무당'이 되었습니다. 여직원들은 저를 슬슬 피했고 어떤 이는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와서 점을 봐달라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생각없이 장난을 치다가 점쟁이가 된 것이었죠.

지금도 많은 분들이 점을 보러 다닐지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점이나 무당에게라도 의지해야 할 만큼 우리들에게는 힘들고 억울한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당들도 자신의 삶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무당도 점을 보러 다니는 것이겠죠. 힘들고 지치고 억울한 사람들의 해결책은 섣부른 점괘가 아닌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관상 또는 사주 이야기' 기사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관상, #사주팔자, #무당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