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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한글로 살펴보면 흔히 있을 것 같은 이름인데, 이를 한자로 살펴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높고 밝은 땅 "상(塽)"에 장황할 "미(娓)". 한자 쓰는 게 무척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외우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손주들이 태어날 때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며 손자들의 사주팔자를 풀이하시고는 해당 사주에 끼일 액을 방지하기 위해 획수를 맞춰 이름을 지어주셨다.

손주들의 사주를 풀어 타고난 운세를 설명하고 삶의 청사진을 조언해주셨던 외할아버지. 그 분의 지론은 '사주가 천금이면 이름은 만금'. 타고난 사주의 부족한 부분은 이름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좋은 이름은 많이 부를수록 좋고 나쁜 이름은 부를수록 해가 된다. 명절 때 외할아버지 곁에 앉아 이름에 대한 해석을 여쭤보면 항상 저런 말을 해주셨던 게 기억난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들

손주들은 이름을 지을 때마다 위와 같이 생인 종이를 받는다
▲ 외할아버지가 적으신 사주 내용 손주들은 이름을 지을 때마다 위와 같이 생인 종이를 받는다
ⓒ 이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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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은 친손주, 외손주 할 것 없이 모두 외할아버지의 심사숙고를 거쳐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맞춤형 이름을 받았다. 외할아버지는 부모, 조부모와 손주의 이름이 중복되는 것을 피했고 아무리 뜻이 좋아도 성과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 흔하다든지, 혹은 발음이 매끄럽지 않거나 거북한 이름이면 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미정(美靜)'이란 이름은 한자 뜻이 아름답지만 한글 발음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있기에 좋은 이름이 아니다. 이같은 원칙을 통해 쌓인 할아버지의 작명 실력은 입소문을 타고 일가친척들, 동네 사람들, 자식의 친구들에게까지 청탁이 쇄도했다.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받은 아기들이 늘어만 갔고, 이름을 받은 사람들은 정성이 깃든 기품 있고 독특한 이름에 모두 흡족해 했다.

애틋한 사랑을 평생 간직한 나의 꽃미남 외할아버지

젊은 시절의 외할아버지는 자태가 고운 꽃미남이었다.
▲ 젊은 시절 외할아버지의 모습 젊은 시절의 외할아버지는 자태가 고운 꽃미남이었다.
ⓒ 이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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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로 작명을 한다 하면 외할아버지의 외모가 필시 덥수룩한 수염에 대머리인 도사의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외모는 일반 가정 할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젊은 시절 외할아버지는 참으로 꽃미남이었다. 내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면 한 미모 할 터인데 유감스럽게도 엄마서부터 할아버지의 미모를 비켜갔다 (유전 과정에서 모종의 음모가 의심된다).

잘생긴 외할아버지에게는 몰래 마음 속에 품어둔 사랑도 있었다 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어린시절에 일가친척이 아닌 단아한 묘령의 여인 사진을 본 기억이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할머니가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사랑했던 일본 여인이었다고. 1920년생이신 외할아버지는 청춘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셨다.

잘생긴 외모에 낭만적인 성품의 조선 청년을 하숙집 딸이 사모하여 낭만적인 연애를 한 것까진 좋았으나, 일본 여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아버지의 불호령과 더불어 큰형 손에 강제로 이끌려 한국으로 돌아와 생이별을 했다 한다. 그 후 일본으로 다시 가려고 몇 차례 시도했으나 결국 좌절되고,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인물은 그저 그렇지만 집안이 좋은 외할머니와 결혼해 살면서도 꽤 오랫동안 그 일본 여인을 가슴속에서 지우지 못하셨던 것 같다.

외할머니와 사이에 1남 5녀를 낳고 한때 사업도 번창하여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유약한 성품의 외할아버지는 그 재산을 지키지 못하셨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제적 능력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도 크셨을 텐데, 거기에 상냥한 일본여인과는 대조적으로 강하고 투박한 성격의 소유자인 외할머니와 살며 평생 채워지지 않은 갈증과 막연한 그리움을 안고 사셨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좌절로 철학과 명리학에 빠진 외할아버지

사업 실패로 한계에 부딪친 외할아버지는 매일 집 근처에 있는 북한산에 오르내리며 수십 년 세월 동안 명리학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한자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이론체계가 매우 복잡한 명리학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외할아버지는 손주들 이름을 손수 짓기 시작하셨다.

외할아버지로서는 현실도피의 수단이었던 듯도 하고, 혹은 무능력한 자신이 손주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애정 표현이라 여기셨을까? 외할아버지가 자신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다 지겨워하며 슬슬 자리를 피하던 엄마형제들도 아이들의 이름과 사주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였으니, 외할아버지의 손주들 작명은 더욱 열성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경제적 능력을 상실해 자식들 고생은 시켰지만 손주들에게는 참으로 인자하고 좋은 분이셨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단 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주뿐만 아니라 심지어 안마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신 외할아버지. 항상 허허 웃으셨고 무조건 손주들 편을 들어주셨다(간혹 외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흉내내며 쓰린 마음을 달래던 때도 있었다).

그분은 떠나셨지만 받은 이름은 남았다

이런 동양적 로맨티스트(!)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 이제는 외할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은 손주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여 자식을 본다. 그런데 자손 중 그 누구도 외할아버지의 작명법을 전수받지 못했다. 이제는 작명가에게 의뢰하거나 부모들이 좋아하는 이름을 붙이거나 주변 어른들이 추천하는 이름을 받을 따름이다.

우주의 이치나 음향오행에 기초해 생년월일시를 따지고 좋은 운명을 불러오는 이름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못해준 미안함을 갚고자 새로 탄생한 손주를 위해 밤을 새며 좋은 이름을 찾고 손주의 행복을 기원하던,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나는 내 이름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난다. 내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혹은 내 사주를 정성스레 풀이해주신 종이를 볼 때마다 그분과 함께 하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내 사주를 따지고 거기에서 결여된 부분을 채우고자 고심했던 외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뭔가 일이 잘 안 풀려 앞이 깜깜하다 싶으면 외할아버지가 적어주신 내 사주팔자를 펼쳐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성격은 음성적. 그러나 넘치는 소걸음으로 밀며 전진한다."

내 사주팔자를 설명한 외할아버지의 한 마디에서 잘 설명된 나의 성향을 읽는다. 그리 나쁜 사주는 아니다. 포기를 모른다는 점에 있어서는 되려 좋은 운명이다.

덧붙이는 글 | '관상 혹은 사주 이야기' 공모전 응모글입니다



태그:#사주팔자, #외할아버지, #음양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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