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아이고, 의미 없다."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군대 이야기는 의미도 없고 인기도 없다. 그런데도 군대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이유는 '공감' 때문이다. 군대를 직접 다녀온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자신의 '아들'과 '가족', 혹은 '친구'를 군대에 보낸 경험이 있다.

대한민국은 '군대'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다. 입대를 약속한 연예인이 외국 영주권을 취득하면 입국 금지를 당하고, 군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대중의 뭇매를 맞는다. 매번 정치인들의 발목을 잡는 것 또한 본인과 자녀들의 병역 기피와 비리 문제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자신과 아들의 병역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엑스레이 사진을 제시하는 등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국 의혹만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2004년 여름,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 인제의 한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여전히 나무 관물대를 쓰는 오래된 생활관. 그들의 계급이 한눈에 들어왔다. 쉴 새 없이 작업을 나가는 일병은 오랜 침상 청소로 활동복 무릎에 구멍이 생겼다. 축구 경기를 할 때, 공이 아니라 상대의 발목을 보고 차라는 상병의 대부분은 인상을 쓰고 있다. 그리고 전역을 앞둔 병장은 침상 한구석에서 조용히 누워있었다.

일병은 일만 하고, 상병은 인상만 쓰고, 병장은 하는 일 없이 누워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 모두 똑같은 시간을 거쳐서 거기까지 왔다. 아니, 훨씬 더 혹독하고 잔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부대에 왔을 때 간부와 선임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던 것이 '선진 병영 문화'였다. 구타와 언어폭력이 사라졌고, 막내 이등병부터 고참인 병장까지 생활관 업무를 동일하게 나눠서 한다는 것이다. 화기애애하고 즐거웠던 첫 점호가 끝나고 생활관의 모든 불이 꺼졌다. 희미한 취침 등을 보면서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하더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긴장이 풀리고 잠이 살짝 들려는 순간, 오늘 하루 들어본 적 없는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잠이 와? 내 밑으로 전부 하우스 집합." 

눈치는 있었지만 정확히는 잘 몰랐다. 점호가 끝난 취침 시간에 야외 하우스로 집합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군부대 사고의 정당성 만들기 '관심사병 프레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있다.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가장 힘든 부대는 '자기가 나온 부대'다. 예비역들은 얼마만큼 많이 맞았고, 혼나면서 군 생활을 했는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지겨운 군대 이야기. 과거에는 힘든 군 생활을 보낸 것이 자랑이었다면, 지금은 군대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걸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군대의 사건 사고는 예전부터 심각했다. 여전히 진상규명되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많지만, 이제껏 감추기 바빴던 군대의 참혹한 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식물인간 이등병 폭행 사건, 포천 군부대 성추행 등 군부대 사고가 연일 뉴스를 채우고 있다. 이제는 누가 어떤 사건의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단번에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보안 유지'라는 대외적인 명분으로 지독한 폐쇄성을 갖는 군대의 문제점은 넘쳐난다. 사병들 간의 구타와 언어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문제는 무조건 덮고 보는 상급기관의 대처방식도 한심하다. 또한 군대의 사건사고를 재판하는 군사법원의 체계마저 의문점 투성이다.

법원과 검찰이 분리된 사회의 재판과는 다르게 군사법원은 군 체제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군법무관 중 보직에 따라 군 판사와 군 검찰관을 임명해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단장은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시, 형량을 감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전시를 위한 군대 재판이라는 명목으로 상식을 벗어난 재판이 이뤄지는 것이다.

관심사병, 혹은 관심병사가 있다. 부대는 '관심사병'을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관심사병'이 되어야만 한다. 결국 생활관에는 '관심사병'과 '비 관심사병'이 남게 된다. 그리고 총기사고와 구타로 인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마치 그들이 '관심사병'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라는 정당성을 얻어 간다. '여자' 군인이기 때문에 성희롱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실제로 사병들은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덮으려고 하는 상급기관을 믿지 못한다. 게다가 부대 내의 부조리를 신고하면 마치 자신이 배신자로 여겨질 것 같아 두렵다. 그들은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자발적인 신고를 통해, 군대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간부에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넘어서 상급 부대로 통하는 핫라인의 확충이 필요하다. 더불어 민간 기관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더욱 강력한 감시 체계와 처벌을 포함한 효과적인 정신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군대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안'이라는 안전장치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내 자식은 군대에서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지금 어울리지 않는다. '내 자식은 군대에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더 현실적이다.

군대는 지키는 것이 목적이지, 적을 만들고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적이 같은 생활관에서 침상을 함께 쓰는 소대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관심사병'이라서 적이 된 건지, 적이라서 '관심사병'이 된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짚어봐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누구도 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에는 명확한 계급 체계와 그에 따른 역할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임에게 얼차려를 주고, 혼을 내야 한다. 그래도 같은 생활관의 사람들이 형이자 동생이고, 가족이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웃고, 한 명의 고민이 모두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부대 배치와 소대원 선택은 사병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대에는 스무 살, 스물한 살 친구들이 감당해내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요즘은 군대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속절없이 당하거나, 스스로 괴물이 돼야 하나보다.  

현실 속 군대에는 없는 <진짜 사나이>

새로운 시도와 높은 시청률로 화제를 모은 <진짜 사나이>
 새로운 시도와 높은 시청률로 화제를 모은 <진짜 사나이>
ⓒ MBC

관련사진보기


방송에 버추얼은 있어도 리얼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초창기 군 생활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준 프로그램이 바로 <진짜 사나이>였다. 나이 어린 조교의 호통에 얼굴을 붉히며 관등성명을 외치는 연기자들의 모습은 새로웠다. 대중의 관심은 시청률로 이어졌고,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윤 일병 사건 이후, <진짜 사나이>가 군 생활을 미화하고 참혹한 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며 폐지론이 제기 되었다. 일부에서는 <진짜 사나이>가 사실상 국방부의 간접광고를 하면서 군대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킴으로 윤 일병 사건과 같은 문제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진짜 사나이>는 리얼에 가까운 버추얼(가상)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의 가장 기본인 재미에 충실하게 만들어진다. 결국 현실과 방송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시청자의 역할이다. <진짜 사나이>의 시청률이 급격하게 하락했었다. 부상과 스케줄을 이유로 멤버들이 자주 교체되고, 비슷한 장면과 이야기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초창기의 <진짜 사나이>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면, 최근의 <진짜 사나이>는 만들어서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들이 군대 사고를 이유로 <진짜 사나이>의 폐지를 강요할 수 없듯이, <진짜 사나이>도 군대 사고 때문에 시청률이 급감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진짜 사나이>가 시즌 2를 준비한다고 한다. 출연자가 바뀐다고 시청률을 회복할 수 있을까? 대중의 기대치는 높지만, 시즌 1 이상의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군생활을 리얼하게 보여줄 수 없다면, 최소한 왜곡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여군 특집보다 본편의 관심이 더 낮다면 시즌 2가 시작해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 

군대 문제 관련 정치권에서는 반짝하고 해결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야말로 군부대 현실과 가장 큰 괴리가 있다.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지급하자거나, 계급 체계를 용사로 통일 하자는 헛소리는 그만 하기로 하자. 제도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군대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다. 나의 '가족'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군대도 사회만큼이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style84)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