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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논문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파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논문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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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얼마 전에 제가 작성한 '학술논문 한 편의 의미' 기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학술논문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번 기사에서는 학위논문과 학술논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논문은 학위논문과 학술논문으로 나눌 수 있죠. 학위논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학위논문의 가치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학위논문은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논문으로 구분됩니다. 요즘은 학사학위를 위한 논문을 '실제로는'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석사학위논문은 거칠게 구분하면 일반대학원의 학위논문과 특수대학원의 그것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학술공동체에서는 일단 일반대학원에 진학하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고, 특수대학원은 석사학위를 받는 것으로 연구경력을 마칠 것으로 예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특수대학원의 학위논문이 필수가 아닌 선택 조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끔 특수대학원의 대학원생이 학위논문을 쓰겠다고 하면, 지도교수가 굳이 말리지는 않지만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짓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당 대학원생을 지도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쓰도록 가르치는 과정이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대학원생의 논문을 지도하는 것이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또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중단하고 진학한 석사과정 대학원생은 사실 논문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 상태이고, 석사학위과정에서 과목마다 소논문을 써보게 했더라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수들은 석사학위논문을 박사학위과정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연습' 정도로 봅니다. 그러니 석사학위논문에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당 대학원생에게는 연구자로서 하나의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과 학술논문 글쓰기 과정을 한번 끝내보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박사학위논문은 어떨까요? 대학교수들은 그 대학원생이 박사학위논문을 마치고 학위를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학문공동체의 동료로 인정하게 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은 해당 연구자의 연구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출발점이며 자신의 전공을 결정짓는 이정표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도교수와 4명의 심사위원 교수에게도 자신의 이름이 그 논문의 표지 뒷면에 '박제'되기 때문에 소홀히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학의 박사학위과정에 입학하여 무사히 과정을 통과하고 이 수준의 논문을 쓰기로 결심한 연구자에게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박사학위논문을 받겠다고 하면 흔히 대학교수나 각종 연구기관의 연구원과 같은 연구자의 길을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자기 경력의 그럴듯한 한 줄로 포함하거나 승진을 위한 조건 중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연구자를 길러내는 연구중심대학이 아닌 교육중심대학에서는 후자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래도 해당 대학원생이 의욕을 보이고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하며, 지도교수가 적극적으로 지도한다면 괜찮은 논문이 나올 수 있지만, 대부분은 겨우겨우 최소한의 수준만을 넘기는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박사학위논문의 질도 그다지 믿을만한 것은 못 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전업 대학원생이 연구자의 길로 가기 위한 결정적 단계이자 디딤돌로서 쓰게 되는 박사학위논문은 어떨까요? 처음에 연구계획서가 통과된 후 연구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의욕이 넘칠 수 있지만, 막상 논문심사 절차로 들어가면 심사교수들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논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박사학위논문은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수행한 독자적인 업적이 아니라 적당히 방어해 주는 지도교수와 날카롭게 공격하는 심사교수들의 치열한 논쟁, 그리고 박사후보자의 굴욕으로 점철된 지난한 과정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탄생한 일반대학원의 박사학위논문은 대체로 꽤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은 그 이전까지 논문의 연구주제와 관련되어 발표된 선행연구들을 총망라하여 정리하고 일단락해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연구주제로 발전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연구결과의 분량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많은 지식과 정보, 지침, 교훈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찍은 사진일까요?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찍은 사진일까요?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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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의 가치

이번에는 주로 대학교수와 대학원생, 각종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학술논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 편의 학술논문이 발표되기까지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에 대해서는 이전 기사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는 학술논문의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대학교수를 포함한 연구자들에게 학술논문은 자신의 전문분야라는 집을 쌓아가는 하나하나의 벽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논문을 보고 활용하는 사회의 입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하거나,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현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거나, 제법 높이 쌓인 지식의 탑에 작은 돌을 하나 더 얹어놓거나, 기존 지식체계의 낡은 댐에 균열을 일으켜서 결국 무너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각 학술논문이 실제로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는 그 논문이 발표되는 시점과 지역, 패러다임의 국면, 학문공동체와 사회 구성원들의 수용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지난 7월 13일에 방영된 <유퀴즈 온 더 블럭>에는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노영선 부교수가 출연하였는데, 그의 학술논문들이 우리 사회의 제도들을 바꾸는데 기여한 것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즉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망률이 훨씬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 결과가 반영되어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법제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역사회 주민들에 대한 심폐소생술 교육이 증가하면 지역 내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증가한다는 노 교수의 연구 결과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 교육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이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것이 부정적인 현상이어서 사회적 개입을 하고 있지만 해결이 안 되고 있을 때, 정부와 기업, 제3섹터에서는 숙련된 연구자들에게 연구를 의뢰합니다(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교수가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주제로 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반영하여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거나 기존 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하는 것입니다. 다만 현실의 문제는 그 연구의 보고서와 그 축약본 또는 편집판인 학술논문의 독자가 용역을 준 주체와 연구자, 그리고 이후에 유사한 연구를 수행하려는 연구자들로만 한정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거나 기존의 현상이 새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을 때, 시민들이 학술논문을 찾아 읽어보고 토론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연구자이기도 한 저 스스로에게 면박을 주는 느낌입니다. 저도 학문공동체 내에서 실적을 내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선배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글쓰기의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이 한자이거나 영어를 번역하거나 소리 나는 대로 적어서 좀처럼 그 뜻을 알기 어려운 생소한 개념과 표현들을 나열하고, 현학적인(이 단어도 어렵네요) 표현을 사용하여 유식함을 돋보이려고 애쓰며,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 또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제언으로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법률 용어와 의학 용어들을 쉬운 말, 순우리말로 바꾸고 있다는 점은 크게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학술논문을 바라보면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저는 연구자들이 학술논문을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써 줄 것을 당부하고자 하며,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이미 쓴 학술논문을 중학교만 졸업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줄 것을 권고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학술논문의 다른 가치들을 짧게 언급하겠습니다. 교수들에게 학술논문은, 일단 연구업적 점수이며, 그것은 승진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가야 할 벽돌들입니다. 또 다수의 대학에서는 학술논문 한 편당 얼마씩의 수당을 책정하여 지급합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제한된 승진 기회와 성과급을 놓고 교수들이 논문실적 싸움으로 경쟁하게 만듭니다. 또한 국제화, 세계화를 내세워 대학 서열을 높이고, 대학 재정을 더 많이 확보하고, 정부나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대학 지도부가 교수들에게 해외학술지 투고와 게재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 이슈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학술논문이 연구업적 점수로 취급되면서 '논문을 찍어내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요한 연구와 좋은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대충 검색해 봐도 '왜 이 연구를 했어야만 했는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운, 하나마나한 연구들의 목록을 뽑아낼 수 있으며, 표절, 제자나 후배의 업적에 올라타기, 논문 쪼개기와 같은 연구부정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연구자들이 경험하는 슬픈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대학 입학자원의 급감, 입시 경쟁률의 급락, 대학 재정자원의 부족 등으로 인해 대학교수들은 많은 압박을 받고 있으며, 좋은 연구를 수행할 여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국가의 관심 분야나 인기 학문으로 재정지원이 쏠리면서 비인기 학문은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인간 존재와 자연 환경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저는 대학교수라는 것이 '전체 사회를 대표하여 더 자유롭게, 더 깊이 생각하도록 허용해 주고, 그것을 위해 사회가 넉넉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 주고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은 그것을 위해 교수가 될 후보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이며, 강의와 학생지도, 사회활동, 행정업무, 심지어 학생모집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현실은 그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교수들에게는 현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기존 지식체계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연구의 형태로 발전시키며, 직접 수행하고, 그 결과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글을 쓸 여유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술논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 레퍼토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연구와 논문은 특정한 현상의 최근 실태와 현황을 탐색하는 연구, 그 현상의 맥락과 패턴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연구, 또는 그 현상의 원인이나 결과를 설명하려는 연구, 그 현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고안하는 연구, 그 대책의 효과에 대한 연구 등으로 나눠집니다.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면, 보통은 위 순서대로 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독자들께서 어떤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국가기관과 대학, 학술지 검색매체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해보고, 이러저러한 논문들을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검색전문 포털사이트에서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태그:#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학위논문, #학술논문,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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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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