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펠레에게 '예술 축구 황제'로 인정받기까지 역경을 극복한 내용을 담은 '펠레가 인정한 예술축구 황제', 8년동안 해외에서 펼친 2002월드컵 홍보 활동을 소개한 '우희용의 명함은 특별하다'에 이은 세 번째 연재입니다.

'우희용'은 축구 지도자다. 그는 1998년부터 현재까지 하와이 주립대학교 여자 축구부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국내에서의 선수 활동, 그런데도 우 코치가 오랜 시간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유럽에서부터 선진 축구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결과다.

1990년부터 4년동안 독일 아마추어 4부리그에서 선수로 뛰었고, 1995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슈트트가르트 주니어팀 코치로 일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아마추어 선수로 4년, 축구 지도자로 7년. 12년동안 예인(藝人)으로 활동하면서도 적지 않은 시간동안 축구인으로서 '앎'을 쌓아 온 것.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 공연후, 우 코치는 "안타깝다. 아직까지도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는 얘기다.

축구를 계속 하기 위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 웅장한 경기장에서는 예인으로, 조그만 축구장에서는 축구인으로. 오랫동안 선진 축구의 '꽃'과 '거름'을 직접 경험한 사람. 우 코치라면 한국 축구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것 같았다.

우리 축구는 32강에 들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만큼 아이들에게 훈련을 많이 시키는 나라는 없다"


- 선진 축구와 비교했을 때, 우리가 가장 많이 뒤떨어지는 부분은 무엇인가.
"개인 기술이다. 예를 들어보자. 축구에서 일대일에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엄청난 차이다. 상대 수비수를 돌파해서 내가 자유로워지면 그만큼 찬스가 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공격수는 수비수보다 높은 수준의 개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 어느 정도 떨어진다고 봐야 하나.
"기술적인 면에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10점을 준다면, 우리는 7점 정도 수준 밖에는 안 된다. 그리고 10점과 7점 사이에는 정말 많은 나라들이 있다. 유럽이나 남미에서 우리보다 개인 기술이 못한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세계 32강에 들지 못한다. 월드컵에서 16강을 노리는 건 지역적인 혜택(지역 예선)을 봤기 때문이다."

- 조직력 등 여러 가지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우선 순위로 놓고 봤을 때, 개인 기술이 우선이다. 조직력이 똑같다면, 개인기가 앞서는 팀이 승리한다. 반면, 개인기가 뒤지는 팀이 조직력만 앞선다고 이기기는 힘들다. 개인 기술이 바탕이 되야 그에 맞는 전술이 나올 수 있다."

- 우리가 축구 선진국보다 개인 기술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만큼 아이들에게 훈련을 많이 시키는 나라는 없다. 독일의 경우, 일주일에 3일 이상 연습하지 않는다. 그나마 모두 저녁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우리 축구는 독일보다 못한가. 결국 훈련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 잔디 구장 등 축구 환경에서도 차이가 많은데.
"물론 맨땅과 잔디는 다르다. 하지만 (기술이 뒤떨어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다. 우리 보다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훨씬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하는 나라가 많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예전에 크로아티아에 공연을 간 적이 있다. 우리보다 열악하더라."

리프팅과 축구는 별개가 아니다. 왜?
"축구는 공을 차는 거다"


- 그럼 축구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훈련을 시키는가.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유럽이나 남미 어린이들 공 갖고 노는 걸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혹시 펠레와 마라도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두 사람 모두 리프팅에도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축구 선진국에서는 리프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축구와 리프팅을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 리프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이다. 축구는 차는 거다. 패스, 드리블, 슈팅등 차는 행위가 90%이상을 차지하는 운동이다. 당연히 얼마나 잘 차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럼 잘 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공의 성질을 잘 파악해야 한다. 공 잘 차는 선수 보고 흔히 볼 센스가 좋다고 하는데 바로 그 얘기다.

하지만 공에 대한 감각은 아무 때나 노력만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그래서 어릴 때 10년은 축구 선수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축구 선진국에서 유소년 축구 선수들에게 리프팅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프팅은 모든 신체 부위를 동원해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공에 대한 감각을 높여 준다."

- 왜 우리는 축구 선진국들처럼 하지 않는가.
"단기적인 시각에서 이기는 축구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개인 기술을 가르칠만한 시간과 능력을 갖기 힘들다. 우리보다 훨씬 좋은 축구 환경에서도 그렇게들 강조하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라. (리프팅은) 공중에서 공을 다룬다. 맨땅에서도 얼마든지 공에 대한 감각을 키워 줄 수 있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리프팅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안타깝다."

축구와 공부는 별개다. 그런데.
"우리는 축구 잘하면 대학 가지 않느냐"


- 유럽이나 미국의 학원 체육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유럽은 거의 클럽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클럽에 가서 운동한다. 축구 코치들도 클럽 소속이니 학교와는 전혀 상관 없다. 미국은 학교 스포츠와 클럽 시스템을 함께 사용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는 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우리와 비슷하게 운영된다. 하지만 축구시즌, 농구시즌, 야구시즌등 각 종목마다 운동할 수 있는 기간이 다 정해져 있다. 비시즌에는 클럽과 연결해서 운동을 한다."

- 우리 학원 체육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축구 잘하면 대학 가지 않느냐. 그런 게 없다. 유럽이나 미국 모두 점수를 받지 못하면 진학할 수 없다. 절대 수업을 빠져서는 안 된다. 진학하지 못하면 결국 자기 손해 아닌가. 아이들이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할 명분이 없다.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한다. 그러니까 졸업 후에도 '운동 선수' 안 돼도 그만이다. 사회 적응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 고등학교 선수 시절에는 어땠는가. 그때도 공부를 병행하기가 힘들었을텐데...
"요즘도 하루 4시간 수업도 받지 못하는 고등학교가 대부분인 것으로 안다. 나도 그랬다. 시합 있으면 수업 못한다. 평소에도 오전 수업 받고 '무슨 게임 보러', '연습 게임 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수업을 빠지다 보면, 다른 친구들은 진도가 이만큼 나가 있는데...나중에는 아예 책을 덮어야 한다. 운동하는 애들 성적 그대로 놓고 보면 전부 꼴찌들일거다. 뭘 알아야 공부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무슨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전인 교육 차원에서 아이들한테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 축구가 32강에 들려면.
"한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아이들에게 개인 기술과 창의력을 길러 주는 축구를 가르쳐야 한다"


- 현실적으로 모두 운동 선수가 될 수 없는데.
"축구를 했다,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에 뚝 떨어뜨려 놓지 않는가.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일반 학생들처럼 적응할 수 없다. 쓸모 없는 사람들로 버려지는 상황이다. 엘리트 체육인 몇몇을 위한 피해자들이라고 본다. 정말 이런 일이 계속 되서는 안 된다. 그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하루 빨리 모색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 축구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개인 기술과 함께 창의력을 길러주는 축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지도자 양산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지도자를 양성해야 하고, 축구 발전을 저해하는 축구 행정을 개선해야 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우리나라처럼 합숙을 시키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축구만을 생각하도록 가둬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린이들에게는 축구보다 소중한 것이 너무 많다. 마음껏 뛰어 놀고, 부모들의 사랑도 듬뿍 받아야 한다."

- 우리 축구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 선수들은 우수하다. 리프팅에 투자한 시간에 비한다면, (리프팅)수준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 축구가 그나마 이 정도 성적을 올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 선수들이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펠레는 모를 것이다. '예술 축구 황제'탄생의 배경에 깔려 있는 우리 축구의 슬픈 자화상을. 훌륭한 축구를 꿈꾸면서 친구들과 똑같이 공부할 수 있었다면, '우희용'은 다른 인생을 꿈꾸지 않았을까. 그럼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도, 펠레의 생일 축하 공연에 초대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9시간 17분 동안 '2002월드컵 티셔츠'를 입고 42.195km를 달렸는지. 왜 그렇게도 월드컵 홍보에 열심이었는지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 코치는 월드컵을 통해 달라진 한국 축구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12년전과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우희용'은 말한다.

"월드컵 성적 좀 안 좋으면 어떻습니까? 축구 발전이 중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우희용 네번째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21(www.sportspeople21.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2002-05-04 12:0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우희용 네번째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21(www.sportspeople21.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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