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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2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법 전면 개정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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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라는 명패를 가지는 것은 우리 노동운동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노조법 제10조 및 제12조에 따라 노동조합의 설립신고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행정관청이 일정 요건에 따라 이를 반려할 수도 있어서 사실상 허가제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이에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인 단결권을 하위 법에서 제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논란이 이어져 왔다.

내가 노동법 공부를 하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법조문 중 하나가 바로 이 연장선상에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의 사용마저도 법으로 제한하여 처벌한다는 점이었다. 노조법 제7조 제3호에서는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노동조합이 아니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정해 두면서, 같은 법 제93조에 따라 이를 어길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름 때문에 처벌한다니, 과잉도 이런 과잉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설립신고제가 합헌임을 확인하면서 노조라는 이름은 신고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단체만의 특별한 권리라고 판단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헌재 2008.7.31., 2004헌바9 결정). 상당히 최근인 2019년 10월 31일에도 대법원은 위 헌재 결정의 연장선상에서 설립신고 이전에 노조 명칭을 사용한 전국대리운전노조 간부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렇다 보니 노조라는 명칭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공인된 조직으로, 조합장이나 조합 간부라는 표현 또한 그 조직을 지휘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쓰여 왔다. 단순한 텍스트 그 이상으로 노동3권의 주체로서의 역사가 그 이름에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이제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조합의 등장

노사관계에 있어 최근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는 단연코 '사무직 노조'의 탄생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생산·기술직 위주로 결성되어 임금이라는 경제적 분배를 놓고 다투었던 것과 달리, 이 신생 노동조합은 공정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중심에 두고 사내 정치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와 같이 특히 젊은 노동자들이 많은 IT업계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단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이할 점은, 이들이 노동조합 명칭을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IT 공룡인 네이버와 카카오를 들 수 있다. 이들의 공식 명칭은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화학섬유노조'의 네이버지회와 카카오지회이지만, 실제로 통용되는 이름은 각각 '공동성명(共同聲明)'과 '크루유니언(KrewUnion)'이다. 특히 '공동성명'은 조합 간부를 회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스태프'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크루유니언'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조합원을 '크루'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내놓은 설문조사의 결과는 젊은 세대가 노조라는 명칭을 구태의 산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충격적 결과를 보여주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의 절대다수인 82.1%가 '노동조합 명칭이 빠진 노조'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하면서, 그 중 가장 큰 이유를 "파업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어서(37.7%)"라고 꼽았다.

노조의 이름을 달기까지 수많은 희생을 감내했을 기존 노조와 조합원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일 터다. 노동자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니? 게다가 '기존의 노동운동과 다르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 노조가 과연 진정한 노동3권의 주체인가.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 수 없다 등등.

이러한 설문의 결과는, 역사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왜 젊은이들은 '노동조합'을 혐오하는가

우리나라의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식을 꼬집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급격한 경제 성장에 비해 법 제도나 시민의식이 따라가지 못했기에, 몸만 큰 청소년기 아이처럼 내실이 없어져 천민자본주의가 극대화됐다는 나름 그럴듯한 말이다.

나는 이 논리가 노동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팔뚝질의 역사'가 깊은 서구 국가들을 보면, 초반에는 말 그대로 피로 물든 노동해방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이나 미국 콜로라도의 '러드로 학살(Ludlow Massacre)'처럼 말 그대로 서로 죽이려고 대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적대적 노사관계는 그러나 전후 경제체제와 법제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평등권이라는 헌법상 가치가 중시되며 점차 바뀌어 나갔다. 독일은 일찍이 '길드' 체제하에서 운영하고 있던 노사협의회를 중심으로 노사 간 대화의 창구를 열어 폭력을 지양했고, 미국은 잘 발달된 소송 및 중재제도를 통해 분쟁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줄여 나갔다.

하지만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짧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쓰러진 전태일의 항거가 1970년의 일이고, 속칭 MZ세대인 필자가 태어난 1980년대에도 정선의 '사북항쟁' 등 피로 물든 역사가 비일비재했다. 우리 기업가들은 여전히 19세기 서양 사업주의 전근대적 관점에서 노조를 자기 사업을 망하게 하는 악마 같은 존재로 보고, 노조는 단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 드는 사업주에 맞서기 위해 점거 등 극단적인 수를 동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노동조합' 혐오는 이 지점에서 태어났다. 팔뚝질보다는 밤샘토론에 더 익숙한 젊은 노조원들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극단으로 치닫는 노사관계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근로조건을 규율하는 각종 노동관계법이 강화되면서 이전처럼 생존 그 자체를 위해 강력 투쟁할 동기도 적다.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진 시대에, 하나의 사업장에 목숨 걸 이유도 없다. 이에 젊은 노조는 기존 노조와 선긋기를 하기 위해 스스로 과거의 이름을 버린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절차의 명과 암

바로 이 점에서 나는 현재의 복수노조 하에서의 교섭창구 단일화절차의 문제점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창구단일화를 통해 1사 1교섭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노조법의 특성상 과반노조 내지 제1노조의 사내 영향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기존 노조와 새로운 노조는 그 자리를 놓고 필연적으로 서로를 적대하며 자체적인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노-노 갈등이 극대화되고, 결국 사용자도 개별 노동자들도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한다.

특히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사내에 다양한 이익이 공존하게 되는데, 하나의 노조가 수많은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령자가 많은 생산직 노조는 연공급제 유지와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며 머릿수를 무기로 대표노조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젊은 사원이 많은 사무직 노조는 공정을 키워드로 능력에 따른 분배를 외치니 '호봉제'로 대표되는 보상체계를 반대한다. 애초에 서로 이익이 맞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법은 2011년 7월 복수노조를 인정한 이래 노사관계의 안정성을 이유로 창구단일화를 고집하고 있으며, 지난 2012년 제도가 합헌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도 했다(헌법재판소 2012.4.24., 2011헌마338 전원재판부 결정). 노조법 제29조의4에서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에 공정대표의무를 부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수노조의 목소리가 과연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며 실제로 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1사 1교섭의 전제에서 벗어나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에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개별교섭 또는 교섭창구 단일화절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구노조와 신노조 간에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또는 적어도 서로 다른 가입범위를 정한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개별교섭을 원칙으로 한다는 단서조항을 신설하기만 해도 지금의 경직적 단체교섭이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기존 거대노조는 밥그릇을 뺏기는 결과를 초래할까봐 걱정한다. 그 결과 지금의 창구단일화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결국 정해진 파이를 나눠 먹는 현재의 '밥그릇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모든 근로자가 윈-윈 할 수 있도록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는 폐지될 필요가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직종이나 고용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지 일회적 교섭의 편리성만을 근거로 내세우는 지금의 절차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다양한 노동을 존중하고, 사업주 또한 유연한 경영을 고려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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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책임노무사, HR 책임컨설턴트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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