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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 최대 승부처로 주목되고 있는 부산지역 유세와 관련, <오마이뉴스>는 어제(11월 30일) 노무현 후보에 이어 1일 이회창 후보의 유세활동을 현지취재를 통해 자세히 소개합니다.

▲ 이회창 후보가 1일 오후 부산시 사상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손을 들어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일 있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제2차 부산 원정'은 구구한 해석을 낳았다. 당초 예정된 경기지역 유세를 취소하고, 갑작스럽게 부산행을 택한 배경도 그렇지만, 오후1시경부터 9시까지 불과 8시간 동안 12차례의 유세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먼저 군중들에게 "부산에 이상한 바람 없죠?"라고 물은 뒤 '없다'는 군중들의 호응 뒤에 "안심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유세장 분위기도 이례적인 일이다. 부산은 시장과 13개 구청, 17개 국회의원 선거구 모두를 싹쓸이한, 한나라당의 명실상부한 아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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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노 20% 묶고, 창 70% 목표"

부산에 '이상한 바람'이 없다면, 애초부터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이 후보가 노풍이 없음을 묻는 것은 역설적으로 부산에 불고 있는 노풍에 대한 한나라당의 불안감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8시간만에 부산 12곳 유세 '강행군' "부산을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부산에 이상한 바람이 불면 어쩌나 해서 다시 왔습니다. 그 동안 상대 후보에 대해 말을 잘 안 했는데, 오늘은 한 마디 하겠습니다. 노 후보가 자기는 새 정치인이고 이회창은 낡은 정치인이라고 하고 다니는데, 나 이회창이 그렇게 헐어 보입니까?(아니오) - 오후 1시30분 서부 버스터미널 유세

"부산에 이상한 바람이 분다고 해서 쫓아왔는데, 이상한 바람 없죠? (네) 그렇다면, 안심하겠습니다." - 오후 3시35분 충무동로터리 유세

"부산에 이상한 바람이 분다고 해서 쫓아왔는데, 이상 없죠? (네) 제가 낡은 정치인입니까? (아니오) 그럼 됐습니다. 부산 시민여러분들이 아니라면 아닌 것입니다." - 오후 4시15분 부산역 앞 유세

"(부산에) 와서 여러분들을 뵈니 괜한 걱정한 것 같습니다. 무슨 바람이 분다고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이제 안심이 됩니다. 여러분 안심해도 되겠죠?"(네) - 저녁 7시50분 동래 매가마켓 앞 유세

"목이 조금 가라앉았는데 여기서 여러분을 보니 다시 힘이 납니다. 여러분 부산은 걱정없죠?(네) 감사합니다. 여러분 믿고 제가 12월 19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 오후 8시40분 서면 밀리오레 앞 유세

1일 '제2차 부산공략'에 나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가는 곳마다 '이상한 바람' 즉 '노풍'의 존재를 물어야 했다. 처음 '불안감'에서 시작된 이 후보의 질문은 유세를 더 할 수록 점차 '자신감'으로 바뀌어갔다.

이 후보는 70을 앞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8시간만에 12곳에서 유세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 '자신감'이 사실이던, 아니면 '자아도취'이던간에 어쨌든 이 후보는 '노풍' 차단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 최경준 기자

▲ 이회창 후보가 1일 부산 시외버스터미널을 방문해 운전기사들과 대화를 나눈뒤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유세장으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선거운동 초반만 해도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느긋했다. 지난달 28일 농심호텔에서 열린 선대위 합동대책회의에서 유흥수 부산 선거대책위원장은 "부산에서 노 후보를 20%대 수준에서 묶고, 우리의 목표인 70%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유 위원장은 불과 3일만에 이 후보를 '영접'해야 했다.

"부산-경남에서 이회창과 노무현의 격차는 5∼6%에 불과하다"는 민주당의 분석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더라도 노 후보의 지지세가 당초 저지선이었던 30% 지지를 넘어 탄력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노 후보가 부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36.8%)을 올린 95년 부산시장 선거의 기록을 넘어서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부산에서 불고 있는 '노풍'이 먼저 젊은 세대들에게 파고들고 있다는 것은 양당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1일 한나라당 유세장을 찾은 군중들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많았고, 이들은 이 후보에게 아직 열렬한 지지를 표명했다. 군중들은 이 후보와 찬조연사들이 "도청정권 부패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함께 '옳소'를 외쳤다.

이회창 후보는 특히 이날 시외버스와 지하철에 탑승하는 등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부산민심 붙들기'에 주력했다. 충무동 유세를 끝낸 이회창 후보는 자갈치역에서 부산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이날 부산역에는 2천여명(선관위 추산)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또 부산 현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이번 대선도 중장년층에서는 여전히 '지역감정'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 4명과 함께 유세를 듣던 김남이(65, 사상구 모라동) 할머니는 '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묻자 "똑똑하고 대쪽같아서 이회창이 대통령을 잘할 것 같다"고 신이 난 큰 목소리로 답했다. 김 할머니는 또 갑자기 기자의 귀를 잡아당기며 귓속말로 "노무현은 부산사람이라도 저그 할배는 전라도라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충무동 유세를 끝낸 이회창 후보는 자갈치역에서 부산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제는 젊은 세대들이다. 권철현 한나라당 후보 비서실장은 "노사모때문에 젊은 애들중에 노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같은 경향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일부에서는 이회창의 대항마로 김대중이 출마했던 97년에도 이 후보의 부산지역 지지율이 52%에 머물렀던 점을 들어 3김 이후 첫 대선에서 '반DJ 비이회창' 성향의 표들이 이 후보에게 쏠리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30대의 대학원생 최용(31)씨는 "나이든 사람은 이회창, 젊은 사람은 노무현을 지지해 현재 부산의 판세는 이 후보가 약간 앞서거나(6:4) 둘이 비슷한(5:5) 상황이다. 극적인 민주당 경선 승리, 비노파와의 대결, 정몽준의 단일화 승복 등이 젊은층에게 어필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세대 대결' 구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이 후보도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 후보가 30분 단위의 유세 강행군을 펼치고, 주위에 소장파 의원(남경필, 오세훈 등)과 젊은 연예인(심현섭, 옥소리, 설운도, 한무 등)들을 대동하는 것도 '젊다'는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특히 유세장마다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4∼5번씩 반복적으로 틀었다. 이 후보 등은 이 음악에 맞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함께 경쾌하게 율동을 해 보이는 등 '역동적이고, 젊은' 유세장을 연출하려고 애썼다.

또 자신들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한 20대 젊은 청년 10여명이 유세장마다 이 후보의 뒤를 따르며 '이회창 대통령'을 연호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동래구 밀리오레 앞에서 진행된 이날 마지막 유세를 30초만에 끝내고 심현섭씨와 남경필, 김부겸 의원 등 젊은 의원들을 대동한 채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밀리오레 상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상가안에서 옷을 고르던 젊은 여성들은 이 후보와 심현섭씨를 발견하고는 "이회창이다", "심현섭 정말 맞어"라며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 이회창 후보가 1일 밤 부산의 한 쇼핑몰을 찾아 젊은이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 후보와 악수를 나눈 한 여학생은 귓볼까지 빨개진 채 부끄러워 했지만 곧 친구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자랑하기에 바빴다. 또 다른 젊은 여성은 이 후보와 악수를 나누고 나서 옆에 있던 친구를 붙잡고 펄쩍 펄쩍 뛰며 좋아 했다. 이 여성은 "이미지가 깨끗해서 이회창 후보가 좋다"며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 후보 일행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오르자 주위로 몰려든 100여명의 젊은 여성들은 '와∼'하며 환호성을 내질렀고, 이 후보는 이들을 향해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그러나 이 후보와 악수를 나눈 또 다른 여성은 "대통령 후보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악수를 해 좋기는 하지만 아직 누구에게 투표를 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노 후보가 제기한 '낡은 정치 청산' 슬로건에 맞대응하고 나선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이 후보는 이날 "그 동안 상대 후보에 대해 말을 잘 안 했는데, 한 마디 하겠다"며 "노 후보가 자기는 새 정치인이고 이회창은 낡은 정치인이라고 하는데, 나 이회창이 그렇게 헐어 보이냐?"고 유권자들에게 반문했다.

88년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노 후보보다 8년 뒤인 96년에야 금배지를 단 자신이 '구 정치인'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더 나아가 "야당 총재 5년간 온갖 핍박을 받았다"며 '정권 심판'을 호소했다.

▲ 이회창 후보가 1일 부산역 유세에서 남경필 의원, 나경원 특보 등 젊은 참모들과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리하면, 부산에서는 중노년층의 이회창 지지세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노풍이 부는 '세대 대결'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이 후보가 젊은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하는 것 역시 중장년층 고정표들의 이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젊은 표들을 적극적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이날 마지막 유세에서 이날의 강행군 영향인지 목이 쉬고 지친 기색이 보였다. 이 후보는 "오늘 강행군을 해 목이 잠겼다"면서도 1차 부산 유세때보다 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어쨌든 자칫 싱거워질 뻔했던 선거 판도가 2강 구도로 재편되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더 나아가 후보들이 젊은 유권자들에 대한 구애에 나섰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부산의 세대대결 구도가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이어지고, 선거 판도까지 뒤집을 변수가 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나라-민주 모두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부산의 판세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이유는 '부산의 젊은이들'이 평소에는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다가 투표일만 되면 행락 길을 떠났던 '바로 그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 부산 충무동에 모인 시민들이 이회창 후보의 연설을 들으며 박수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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