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은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관련이 깊다.

1993년 2월 23일, 김운용 위원(당시 62세.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 41명중 26표를 획득, 13표를 얻은 신동욱 후보(당시 대한궁도협회장)를 누르고 31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다. 바로 다음날인 24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에도 선출됨으로써 대한체육회에 '김운용 시대(31, 32, 33대 회장)'가 열린다.

▲ 솔트레이크 선수단 해단식에 참석한 김운용 위원
ⓒ 자료사진
2001년 7월 IOC 위원장 선거에서 패배, 일생일대의 승부수가 실패로 돌아간 김운용 위원은 이어 태권도협회 비리에 아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 2월 23일, 김운용 위원은 "한국 선수들이 폐회식에 참여할 것이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치러진 동계 올림픽의 대미를 축하할 것이다"는 내용의 '솔트레이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여론의 거센 비난을 자초한다.

결국 2002년 2월 28일 김운용 위원은 "대한체육회장직과 KOC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며 '사임'을 발표한다.

그러나 김운용 위원은 여전히 세계 스포츠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2001년 12월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창설된 자유재단이 선정한 '올해의 미국 우호메달(American Friendship Medal)'수상자로 선정됐고, 2002년 11월에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 9선에 성공했다.

이어 김운용 위원은 독일 격주간지 스포츠인테른이 발표한 '2002 스포츠계 영향력이 있는 100대 인물'에서 이건희 IOC위원(13위), 박용성 IOC위원(51위), 정몽준 FIFA부회장(51위)등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최근 김운용 위원은 1년여만에 국기원장으로 복귀했다.

최요삼 3차 방어 성공, 김상현 실패
스포츠소사 2월 23, 24일

▲ 1980년 2월 24일자 동아일보
2002년 2월 23일, WBC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최요삼이 도전자 일본의 야마구치 신고를 10회 KO로 누르고 3차 방어에 성공한다. 2001년 82회 동계체전에서 한국 스키 간판 허승욱이 4년 연속 4관왕에 등극한다. 1997년 조민선이 독일 오픈 국제유도대회 66kg급 결승에서 독일 이본느를 한판으로 제압하고, 93년 이후 대회 5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계주 결승에서 김기훈 이준호 모지수 송재근이 4/100초 차이로 캐나다를 누르고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 1980년 김상현이 WBC슈퍼라이트급 타이틀전 3차 방어에 실패한다. 왼손잡이 복서로 인기 높았던 김상현은 동급 1위 미국의 사울 맘비와 치열한 난타전 끝에 14회 1분 44초 KO로 무너진다.

2002년 2월 24일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500m 준결승에서 김동성이 9/100초 차이로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미국 안톤 오노 역시 다시 한번 할리우드 액션을 선보였으나, 반칙으로 실격된다. 1996년 95-96 월드컵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 남자 1000m에 출전한 제갈성렬이 1분15초31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한다.

WBA주니어밴텀급 타이틀전에서 김형철이 고이티아에게 12회 TKO패, 타이틀 탈환에 실패한다. 1974년 제27회 서독오픈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 결승에서 정현숙이 서독 베첼과 접전 끝에 3:2로 승리, 세계를 제패한다.
2003-02-23 19: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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