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0번째 프로야구단이 탄생했습니다. 오늘 쌍방울레이더스가 창단식을 갖고 내년부터 페넌트레이스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기자 내년부터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에 8개 구단이 참가하게 됩니다. 오늘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단식에는 각계 인사와 전북 도민 5천여명이 찾아와, 쌍방울레이더스의 출발을 축하해줬습니다.

화면 이봉녕 구단주가 마이크 앞에 선다. 김대중 대통령(당시 평민당 총재)의 축하 화환도 보인다.

이봉녕 "남녘 길을 달려 온 희망 찬 봄 소식과 함께 지금 쌍방울레이더스의 출범을 알리는 뜨거운 함성이 덕진벌 곳곳에 물결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한국프로야구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이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이하여..."

기자 3년 내 우승을 목표로 창단된 쌍방울레이더스는 올해부터 2군 리그에 참가하게 됩니다. 쌍방울레이더스의 출범으로 내년에는 프로야구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후 레이더스의 미래를 예고한 듯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1990년 6월 21일 군산상고와 연습경기를 하기 위해 전주에서 군산으로 가던 레이더스 22인승 미니버스가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버스 운전사 허양수씨(당시 50세)와 트레이너 함진씨(당시 28세)등 2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을 당했다.

1991년 출발은 좋았다. 레이더스는 개막전에서 이글즈를 11:0으로 꺾고 화려하게 프로야구 전면에 등장한다. 레이더스는 그해 정규시즌에서도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OB베어스를 꼴찌로 밀어내며 7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우승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레이더스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시즌에서 6위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

▲ 2002년 12월 12일 김성근 감독 회갑연 케잌 커팅. 레이더스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계형철 이광길 코치, 김기태 선수등이 보인다

ⓒ 김진석

레이더스의 '돌격대 야구'가 꽃 피기 시작한 것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1995년 10월 취임한 김성근 감독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레이더스를 진출시키면서 '공포의 외인구단'신화를 일궈낸다. 이 기간 동안 레이더스가 선보였던 검정스타킹을 무릎까지 끌어올리는 이른바 '농군패션'은 근성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의 모습을 상징했다.

하지만 농군 패션도 IMF를 이길 수는 없었다. 1997년 11월 모기업 (주)쌍방울개발이 부도나면서 허약해지기 시작한 레이더스는 결국 1999년 시즌을 끝으로 프로야구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와 함께 명문구단 탄생을 꿈꿨던 전북도민들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비록 장미같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레이더스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많다. 민들레처럼 끈질기게 선수 생활을 이어 갔던 선수들. 유독 레이더스에는 아름답게 은퇴한 노장 스타들이 많다. 일명 '학다리 수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OB원년멤버 신경식 선수를 필두로 불운의 스타플레이어 박노준, 개막전에서만 7개의 홈런을 날린 해결사 한대화, 삼성라이온즈의 거포 김성래 선수, 163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던 김광림 선수까지. 모두 레이더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또한 레이더스에서 성장한 스타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기둥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3년 4월 최연소 노히트노런 신기록을 수립한 김원형, 시즌 최다구원승과 53연속 경기 무패 기록 보유자 김현욱, 3년 연속 지명타자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클러치 히터 김기태, 4연타석 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최고의 안방마님 박경완 포수, 1000경기 연속 출장기록에 빛나는 철인 최태원 등. 현재 SK와이번스에는 김원형 김기태 박경완 최태원 선수가 소속돼 있다. 김현욱 선수를 제외하면, 다시 한둥지에 모인 셈이다.

14구단 창단, 8도시 살림

이제까지 창단된 프로야구 구단은 모두 14개이다. 1982년 출범 이후 연고 도시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구단은 롯데자이언츠(부산)와 삼성라이온즈(대구)뿐이다.

MBC청룡은 1990년 LG트윈스에게 서울을 넘겨줬고, 대전을 연고로 창단 됐던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는 1985년 서울로 이삿짐을 옮겼다. 1988년 빙그레이글즈(현 한화)가 생기면서 대전은 비로소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광주는 해태타이거즈가 2001년 기아타이거즈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천은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도시다. 1982년 삼미슈퍼스타즈, 1985년 청보핀토스, 1988년 태평양돌핀스, 1996년 현대유니콘스, 2000년 SK와이번스등 5개 구단이 인천을 들락거렸다. 전주는 쌍방울레이더스가 해체되면서 '무주공산'으로 변했고, 수원에는 현대유니콘스가 2000년부터 자리를 잡고 있다.
/ 이정환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레이더스가 기여한 바 역시 결코 적지 않다. 레이더스의 출범으로 연고 지역이 확대됐고, 또한 양대 리그를 시험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레이더스의 '은퇴'는 도시연고제 도입과 함께 이루어졌다. 2000년 1월 23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구단주총회를 통해 SK와이번스 가입 승인과 동시에 쌍방울레이더스를 퇴출하기로 하고, 18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의 숙원으로 꼽혔던 도시연고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KBO의 결정이 한국프로야구 발전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7구단 체제로의 회귀를 막기 위한 미봉책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창단 조건으로 연고지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와이번스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2000년 3월 30일, 와이번스가 인천으로 입성하면서 전주만을 연고로 하던 구단은 사라지고 말았다.
2003-03-30 19:59ⓒ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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