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는 '용병 시대'를 맞기까지 크게 3단계 과정을 거치며 농구팬을 열광시켰다. 현대와 삼성은 각각 슛도사 이충희와 전자슈터 김현준을 앞세워 한동안 라이벌 시대를 풍미했고, 여기에 허재 김유택 한기범을 앞세우고 기아가 뛰어들더니 곧바로 '기아 전성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현대와 삼성이 더 이상 기아의 독주체제를 견제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쇠락했을 때, 처음 기아가 그랬던 것처럼 이상민 서장훈의 연세대는 '기아 전성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렇다면, 한국 농구가 가장 재미있었던 시절은 언제일까. 적지 않은 농구팬들은 현대-삼성의 '양강 시대'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던 기아가 정상에 우뚝 섰던 시기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젊은 허재'가 날라 다녔던 시절.1990년 오늘(2월 25일) 기아가 농구대잔치 2연패에 성공한다. 기아는 89농구대잔치 챔피언 결정전에서 3년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던 현대를 72-67로 누르고 승리를 거둔다. 이와 함께 기아는 현대 이충희의 통산 4천점 달성 또한 다음 시즌으로 미루도록 만든다. 이충희는 이날 21득점, 3999점을 기록했다.당시 1차 대회에서 3위로 부진했던 기아는 주전들이 삭발을 결행하는 의지를 보였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2, 3차 대회를 석권했다. 우승 주역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역시 허재(당시 25세). 허재는 당시 허리 부상으로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허재는 우승후 인터뷰에서 "정말 기쁘다. 생애 이처럼 값진 우승의 감격은 처음이다. 병상에만 누워 있을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BOX1@89농구대잔치는 허재에게 뜻깊은 시즌이었다. 허재는 당시 508점으로 선배 이충희(439점)를 제치고 첫 득점왕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으며, 그 밖의 기록에서도 3점슛 1위(76개) 어시스트 2위, 리바운드 5위에 랭크되며 전성기를 맞게 된다. 허재는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부상에도 불구하고 두게임을 통해 51득점 17리바운드라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1984년 해방 후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테니스 대표팀이 데이비스컵 출전을 위해 중국(당시 中共)에 입국했다. 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진선 김춘호 송동욱 김봉수 선수등이 출전했다. 1984년 2월 25일자 동아일보는 "선수들이 한때 긴장했었으나 정상을 되찾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 믿음직스럽다"는 당시 김문일 감독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1964년 알리가 세계헤비급 왕좌에 오른다. 알리는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챔피언 리스튼을 7회 TKO로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리스튼은 "1회전 팔에 입은 부상 때문에 패배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알리는 "나는 누구하고도 싸울 것이다. 나는 세계의 어느 선수에게도 승리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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